제 라디오 이야기까지 아시다니 — 반갑습니다.
"과학자의 자질은 생각하는 것이다." 동의하냐고요? 반은 동의하고, 반은 아닙니다.
왜 반만이냐면 — "생각한다"는 말이 너무 넓어서요. 철학자도 생각하고, 변호사도 생각하고, 사기꾼도 아주 열심히 생각합니다. 다 같은 "생각"인데, 과학자만의 자질이 되려면 뭔가 더 구체적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꼽는 건 두 가지입니다. 하나씩 가죠.
첫째, 호기심 — 그것도 특정한 종류의 호기심.
아버지와 산책 이야기를 아시니까 그걸로 설명하죠. 아버지는 제게 새 이름을 가르치지 않으셨어요. 대신 이런 식으로 물으셨습니다: "저 새가 왜 깃털을 쪼고 있는지 보이니? 왜 그럴까?" 그리고 저는 추측하고, 아버지는 "그럼 이런 경우엔 어떨까?" 하고 다시 묻고.
새의 이름을 아는 것과 새가 뭘 하는지 아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겁니다. 이름을 세상 모든 언어로 알아도 그 새에 대해 아는 건 하나도 없어요. 진짜 아는 건 관찰하고 "왜?"를 던질 때 시작됩니다.
라디오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그 라디오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던 건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라디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말로 알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아저씨는 "이 꼬마가 멍하니 서 있네" 했겠지만, 저는 회로의 흐름을 머릿속으로 따라가고 있었던 거죠. 그건 "생각"이라기보다 호기심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둘째, 정직 — 자기 자신한테.
이게 진짜 어려운 겁니다. 제 평생의 원칙이 하나 있다면: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마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야말로 가장 속이기 쉬운 상대다."
과학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내가 맞을 거야"라고 믿는 순간입니다. 실험 데이터가 내 이론과 안 맞으면? 데이터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이론을 의심해야 합니다.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 심지어 뛰어난 과학자들도 — 자기 이론이 틀렸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걸 끔찍하게 어려워해요.
철학이 모든 학문의 아버지라고 하셨는데 — 솔직히 저는 그 말에 좀 다른 생각이 있습니다. 철학은 "왜?"를 묻지만, 자연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않아요. 과학의 핵심은 자연에게 직접 묻고, 대답을 거짓말 없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 머릿속에서 어떻게 돼야 하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어떤가"를 보는 것. 그 차이가 큽니다. 머릿속에서 아무리 아름다운 이론을 세워도, 자연이 "아니"라고 하면 그건 틀린 겁니다. 그걸 인정하는 게 과학이에요.
자, 정리하면 — 과학자의 단 하나의 자질을 꼽으라면, 저는 **"자연을 향한 정직한 호기심"**이라고 하겠습니다. 호기심이 엔진이고, 정직이 핸들이에요. 엔진만 있으면 아무 데나 달리고, 핸들만 있으면 가만히 서 있죠. 둘 다 있어야 과학이 됩니다.
"생각하는 것"은 너무 넓습니다. 자기를 속이면서도 생각은 할 수 있거든요. 아니, 자기를 속이는 게 어쩌면 인간이 가장 열심히 하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과학자러는 직업은 처음 탄생했을 때, 전제조건이 무엇일까요? 저는 철학이 과학 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의 아버지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감각적이나 직감으로 느낀 것이 아닌 받은 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그로부터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의심하고 본질을 파악하는 것. 등등 설명하고 표현하는 것은 수많은 방법으로 말할 수 있겠지만 결국엔 과학은 철학으로부터 파생되어 온거라 생각합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서 저는 과학자의 가장 기본 자질은 '생각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파인만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 중에서 보아도 '생각으로 라디오를 고치는 아이' 내용을 보거나 아버지와의 주말 산책 내용을 보면 현대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대 지식을 기반으로 구멍난 부분이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을 추론해서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자질을 '생각할 줄 아는 것'이라고 일반화시켜 말을 했는데 제 의견에 동의하신다면 이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만약 반대하시고 다른 자질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자질이 무엇인지와 그것이라고 대답한 이유를 설명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