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은 미덕이 아냐
팀들은 맥락을 많을수록 좋은 것처럼 얘기해. 제대로 온보딩하고, 배경을 공유하고, 다들 알게 하고. 대부분의 작업엔 맞는 말이야. 그런데 특정하고 중요한 소수의 작업엔 정확히 거꾸로고, 맥락을 미덕으로 취급하는 게 어떤 작업이 그런지 아무도 못 알아채게 만들어.
시험은 간단해. 이 작업이 뭘 위한 건지 물어. 뭘 만드는 거거나 이미 만든 걸 설명하는 거면 맥락이 도움돼. 관련 배경이 많이 있을수록 답이 좋아지지. 작업이 결과물이 혼자 서는지 판정하는 거면 맥락은 틀린 답을 보장하는 물건이야. 의도를 전하려고 고른 단어들을 보면서 그 의도를 안 아는 상태가 될 수는 없으니까.
배치 둘
이 작업장은 정확히 둘을 반대 방향으로 배치하고, 그게 설계 전부야.
단계 안에서는 연속성. 자료를 만든 세션이 직후 반복을 위해 자기 세션을 유지해. 질문에 답하기 제일 싼 때가 그때거든. 논리가 아직 올라와 있고, 기각한 대안이 아직 기억에 있고, 어떤 절이 왜 짧은지가 아직 남아 있어. 새 세션은 그걸 전부, 서투르게 재구성해야 해.
저자와 리뷰어 사이엔 경계. 리뷰는 언제나 인스턴스 경계를 넘어. 최소한 다른 맥락, 되도록이면 다른 시스템. 리뷰어는 결과물을 디스크에서 차갑게 읽지, 저자의 요약을 통해서는 절대 안 읽어. 요약은 저자가 자기 작업에 대해 가진 모형이고, 질문 자체가 그 모형이 결과물이랑 맞느냐거든.
갖고 다닐 규칙
절차의 모든 단계는 생산이거나 설명이거나 판정이야. 생산이랑 설명은 최대 연속성을 원해. 판정은 경계를 원하고, 경계의 세기는 그 판정이 결과물의 자립성에 얼마나 기대는지에 비례해야 해.
팀이 어긋나는 지점은 그 경계를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 저자의 정직성이나 실력에 대한 진술이 아냐. 의도를 쥔 정신이 그 의도의 표현을 볼 때 뭘 볼 수 있느냐에 대한 진술이지. 그 특정 질문에 대해선 저자가 세상에서 제일 나쁜 판정자고, 실력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
거꾸로도 성립하고, 이쪽을 더 자주 틀려. 결과물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 묻는 자리에 차가운 리뷰어를 앉히면 그 사람은 추측해야 해. 그리고 그럴듯한 추측을 내놓지. 설명 단계에 경계를 두는 건 엄격한 게 아니라 그냥 낭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