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새로운 건 하나도 없어
앞의 두 강의를 되짚어 읽으면 기계를 관리하려고 발명한 정교한 의식처럼 들릴 수 있어. 아냐. 진짜 저자랑 진짜 출판사는 출판이 존재한 이래로 정확히 이 파이프라인을 돌려왔어. 독자를 여러 겹 두는 경우도 흔하고. 그리고 그 단계 하나하나가 이 작업장이 측정으로 다시 발견한 그 이유 때문에 존재해.
저자가 써. 기획 편집자가 이게 통째로 서는지를 보고 읽어. 일부러 저자가 아니야. 저자는 지면에 있는 것과 머릿속에 있는 것 사이의 간격을 못 보니까. 교열자가 문장 단위로 언어를 보고 읽고, 저자의 의도가 아니라 원고를 받아. 교정자는, 뭘 말하려던 건지 기억해서 무의식적으로 결함을 메우는 일이 없도록, 최종 교정지를 그게 나온 원고 없이 읽어. 베타 독자는 차갑게 읽고 어디서 헷갈렸는지를 보고해. 왜 그런지는 말고.
업계 판이 알려주는데 소프트웨어 판이 잊는 것
셋이고, 각각이 이 작업장이 어렵게 내려야 했던 결정에 대응해.
역할은 연차가 아니라 뭘 볼 수 있느냐로 갈려. 교정자는 하급 교열자가 아냐. 일부러 정보를 엄격하게 덜 가진 독자고, 그 삭감이 곧 계기야.
아무도 그걸 모욕으로 안 받아들여. 교열자를 붙이는 게 자기가 글을 못 쓴다는 뜻이냐고 항의하는 저자는 이 업을 오해한 거야. 경계는 실력이 아니라 위치에 관한 거고, 출판은 그걸 누가 공학 팀에 설명해야 하기 몇 세기 전에 정리했어.
패스마다 이름이 있고 순서가 있고 값이 매겨져 있어. 일정 끝에 덧붙인 점검표가 아냐. 그게 일정이야. 교열을 건너뛴 출판사는 패스 하나를 아낀 게 아니라 다른 품질의 책을 낸 거고, 건물 안 사람들은 어느 출판사가 그러는지 다 알아.
진짜 차이는 하나뿐
출판에선 사람이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이 경계를 지켜줘. 여기선 그걸 지어야 해. 같은 시스템한테 모든 역할을 요청할 수 있고, 시스템은 각각에 예라고 답할 거니까. 그건 새 절차를 발명할 이유가 아냐. 업계가 인력으로 하는 걸 하네스로 구현할 이유지.